물이 맑아 붙여진 여수(濾水)는 전라선의 종착역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전라선 끝까지 내려오느라 무궁화호도 힘에 부쳤나 보다. 도착시각보다 20여 분 연착되었고 그 덕분에 더욱 쨍한 햇살에 빛나는 여수를 마주했다.
자전거를 탄 청년들
돌산대교에서 거북선대교를 거쳐 오동도까지 내려왔다. 하늘빛 바다를 바라보며 신나게 달리고 있는 또 다른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어디를 돌았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이정석(좌), 최기웅(우)
여수 놀러 오셨어요?
기웅 - 네. 오늘 저희 휴일이거든요. 그래서 가까운 여수로 놀러 왔어요. 방금 도착해서 자전거로 오동도 돌고 그 다음에는 여수 수산시장가서 회도 먹을까 하고요.
회 먹은 다음에는 여수 또 다른 일정이 있을까요?
정석 - 아니요. 수산시장 둘러본 다음에 회 먹고 이제 각자 집으로 가려고요. 여수하면 향일암 일출이 유명한데 이번에는 못 봐서 그게 좀 아쉬워요. 다음 번에 올 때는 향일암은 꼭 들려보려고요.
여수 와보니 어떠세요?
정석 - 말로만 듣던 돌산대교도 보고 오동도도 와보고, 자전거도 실컷 타네요. 오길 잘했다는생각이 들어요. 생각했던 것 보다 바다도, 항구도 무척 아름답고요.
무슨 일 하세요?
기웅 - 둘 다 여수 근처에서 일하는데요, 저는 순천역에서 일하고요. 이 친구는 구례구역에서 일하고요. 일한 지 1년 정도 됐네요. 철도공사 엔지니어라 출근을 역으로 하는 셈이죠.
와! 오동도에서 철도에서 일하는 분들을 만나 뵙게 될 줄이야!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건가요?
정석 - 저희도 오동도에서 일 얘기를 할 줄은. (웃음) 기차에는 레일 말고도 전차선이라는 게 있어요. 거기에는 2만 5000볼트의 전기가 흐르는데 그 전기의 힘으로 열차가 운행되거든요. 그 전차선에 전기를 공급하고 시설물을 유지, 보수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기웅 - 기차가 다니지 않는 새벽에 보수해야 할 차량을 끌고 시설물에 이상이 없는지 하나하나 육안으로 점검하고 바로 조치하고요.
지하철 타고 출근하듯 기차 타고 출근하는 거네요?
정석 - 그렇죠. 매일 출근길은 통근기차와 함께하고 있죠. 이 지역에는 기차로 출근하는 분들 꽤 많아요. 아침엔 북적북적해요.
각자의 일터인 역 자랑 좀 해주세요.
기웅 - 순천은 당연히 순천만이죠! 그리고 이제는 끝났지만 얼마 전까지 정원박람회도 했었잖아요. 거기 가면 볼 게 참 많아요. 지금은 행사가 끝나서 무료입장이니 꼭 가보셨으면 좋겠어요.
정석 - 구례구역 하면 지리산이죠. 지리산 노고단 하면 얘기 끝나요.(웃음) 요즘 같은 때에 단풍놀이 즐기러 오는 분들도 꽤 많고요. 사시사철 산세가 변하는 모습 또한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인 곳이에요. 또 봄에는 산수유가 그리 예쁘게 피어날 수 없구요. 아, 곡성 기차 마을이라고 곡성역에 조성되어 있는데 거기도 잘되어 있어서 구경하면 재미있으실 거예요.
두 분이 여행 자주 다니세요?
기웅 - 휴일에 맞춰 자주 만나기는 하는데 여행을 자주 다니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오늘 이렇게 여수 함께 와보니 좋네요. 매일 일하러 갈 때 타던 기차였는데 놀러 가면서 타는 기차라 느낌도 색다르고. 순천에서 여수까지 30분도 안 걸려서 금방 오긴 했지만요.(웃음)
사실 서울에서 여수까지 기차로 오는 게 고된 일일 수도 있어요. 그래도 기차로 와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요?
기웅 - 서울에서 무궁화호 타고 오셨다고 하셨죠? 그럼 한 5시간 넘게 걸리게 오셨겠네요. 그런데 오는 동안 지루하셨는지 묻고 싶어요. 창밖에 스쳐 지나가는 느린 풍경들을 보면서 그 시간 자체를 또 즐길 수 있게 되잖아요. KTX보다 월등히 느려도 기차는 그만이 가진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지 않을까 싶어요.
정석 - 솔직히 차 타고 네비게이션 켜면 못 갈 곳이 없죠. 시간 버리지 않고 가장 최단 거리로 빠르게 어디든지 갈 수 있겠죠. 누군가에게는 기차를 기다리는 게 힘들고 따분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또한 기차여행의 매력 아니겠어요? 느리고 불편하다는 것조차 여행의 과정이 되는 거죠. 여행지까지 찾아가는 과정이 또 다른 여행의 재미를 전해주는, 그게 기차 여행의 맛이죠.
무작정 대화를 건 우리를 흔쾌히 맞아주었던 두 청년과의 이야기는 꽤 즐거웠다. 그리고 우린 그렇게 각자 자전거를 타고 헤어졌다. 좋은 기억을 남기고 헤어졌던 이들을 우연히 여행 마지막 날 다시 만났다. 구례구역에서 일한다는 정석씨와 우연히 마주친 것이다. 서로의 우연한 만남에 놀라면서도 그 반가움은 배가 됐다. 내려오면 꼭 연락 달라는 그와 내려가면 꼭 연락 드리겠다는 서로의 다짐만 남긴 채 우리는 또 그렇게 스치듯 인사를 했지만 이 인연이 여기가 끝이 아님을 서로가 알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