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선 북천역
하동역과 진주역 사이에 위치한 경전선의 작은 시골역이지만 역사가 참으로 로맨틱(?)하다. 핑크빛 역사가 유치한 듯하면서도 사랑스러움 가득 안고 있는 이곳은 매년 가을마다 코스모스축제가열리는 북천(北川)역이다. 한들한들 거리는 코스모스 사이로 북천역을 향해 기차가 달려온다. 오늘도 북천역을 향해오는 기차를 맞이하는 역무원 아저씨는 코스모스 한가운데 서 있었다.
꽃보다 역무원
김승곤, 한국철도공사 로컬관제원
올가을에 많은 관광객이 다녀갔다고 해서 저희도 와봤어요.
축제 때는 많이 왔제. 많이 왔어. 우리역 관리역이 진주인데 진주에서도 지원을 오고, 본부에서도 지원을 오고. 코스모스축제 다 끝났는데 뭐하러 왔노. 그런데 이 역도 옮길 계획일거여. 뭐, 아직 정해진 건 없고 어떻게 계획이 바뀔지는 모르는 거다만.
그럼 역이 사라지는 건가요?
그거야 모르지. 어떻게 될지는.
역무원님은 언제부터 이 역에 있었어요?
올해 6월부터.
한 역에 역무원이 쭉 근무하는 건 줄 알았어요.
안 그래이. 3년 주기로 우리도 담당 지역이 바뀌어. 난 원래 하동역이라.
그럼 여태까지 어느 역에 계셨나요?
나는 거저 쪼깨 강원도 쪽에서 시작했네이. 거기서부터 부산 거기서 진주, 하동 이렇게 지나뿌렸네. 지금은 북천역이고.
지금 얼핏 듣기로도 경력이 꽤 되시는 것 같은데요.
나는 뭐 오래됐지. 내후년이면 정년퇴직이여. 벌써 일 한 지 30년이 넘었응께.
30년을 역과 함께 해오신 거네요! 기차 여행도 많이 다니셨겠어요.
에이, 그런데 안 다닌다. 지금은 근무체계가 많이 좋아져서 인자 주간 이틀 그 담에 야간 이틀 일 하고 그라메 이틀 쉬는데 옛날에는 하루 근무하고 하루 쉬었다. 그라니 여행을 간다든지 못그라재.
가장 기억에 남는 역 있으세요?
이젠 역도 기억이 안나뿐다. (웃음) 하도 오래 돼서. 그래도 아무래도 맨 처음 일했던 강원도가 가장 기억에 남는 거 같어. 사실 강원도 기차는 여기하고 영 다르거든. 벌써 30년 전이니 오죽 열악했겠어. 또 날은 얼마나 춥고. 힘들고 고생 많이 해서 그런지 거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카이.
축제가 끝난 다음에도 북천역에 많이들 오세요?
축제 끝난 이후로는 동네 주민들만 왔다갔다하는 거지 뭐. 그래도 축제 때는 참 많이 오는데 아쉬운 게 많어. 코스모스 자체는 다 좋은디 여 와가지고 더 할 게 없어. 그니까 북천역 다른 곳도 보고 갔음 하는디 공간도 없고 볼거리라 카나, 그런 것도 없고 멀리서 왔는데 딱 코스모스만 보고 가잖어. 가는 사람도 아쉽고 그렇게 올려 보내야 하는 우리도 아쉽고. 코스모스 보러 온 김에 다른 다양한 할 거리가 좀 있었으면 혀.
그런데 다른 분들은 안보여요. 역무원님
혼자 일하고 계세요?
그라제. 3명이 주간 1명 야간 1명 이렇게 돌아맹기며 하고 있다카이. 여기가 총 3명이 일하는데 오늘은 내가 당직이여. 요 근처 횡천역도 원래 3명이었는데 없어져뿌고, 완사역도 고러코.
이렇게 사라지는 간이역 보면 어떠세요?
점차 역이 사라지고 있는 건 안타깝지. 그런데 어쩔 수 없지 않겠어? 세상이 너무 빠르게 돌아가는걸.
간이역에서 일하시는 건 어떠세요?
여유롭다고 봐야제. 이런 데 오면 아무래도 열차 수가 적으니까. 혼자 근무하다 보니까 직원들하고 뭐 이야기할 그런 게 없으니까 조금 그런 게 아쉽제. 일하기는 여유로운 면도 있고. 소소하니 오래된 매력도 있고. 아쉽지, 아쉬워.
아쉽다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역무원 아저씨는 뛰어나갔다. 기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알고 보니 우리가 타야 할 기차라 우리도 뛰어 나갔어야 했는데 그것도 잊은 채 아저씨와의 옛추억을 더듬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것. 인사도 제대로 못 드리고 아쉬움을 남긴 채 기차에 올라탔다. 짧은 만남을 뒤로한 채 아저씨는 우리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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