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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문학부] 젊음, 아픔의 번지수를 묻다: <적과 흑>

작성자 교수_박기원 작성일 2015.05.07. 10:54:45

 

 

여전히 뜨거운 고전을 펼치며…
어른들은 너무 많은 잘못을 저질렀고, 저지르고 있다. 그들이 올라서 있는 (층층이 쌓인) 시간의 안락한 다락방 위에서 다음세대가 올라올 사다리를 발로 걷어찬 순간부터!
'(아래를 내려다 보며) 아프냐?'
'(위를 올려다 보며) 아픕니다!'

 

착하고 똑똑한 어른들은 위로를 팔아 더러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지만, 위로의 번지수는 결국 틀렸다. 그들이 아픈 건 단지 청춘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다리에서 떨어진 자라면 누구나 아파할 만한 고통이기 때문이다. 미래라는 안락한 시간의 다락방에 모두가 오를 수 있는 것처럼 사다리를 세워놓고 오르기를 가르치고 강권했던 것은 누구였던가? 원래 모두가 사다리의 정점에 오를 수 없는 건 당연한데도 말이다.
그래서 젊음은 속고 또 속는다. 사다리에서 먼저 떨어져 무릎 꿇은 사람의 등 위에 다음에 온 사람이 또 떨어진다. 올라섰을 때의 쾌감만을 미리 배웠으니 정작 떨어지거나 스스로 내려왔을 때의 아픔을 직시하는 법은 몰랐고, 그때마다 제대로 위로받지도 못했다.
그래서 아프고 또 아프다.

 

소설 <적과 흑>은 이 계급과 세대의 사다리를 지탱하는 추악한 원리를, 그 속에서 희생되는 청춘의 아픔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늘 푸른 '권장도서'이다. 그러나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가는 불온한 시대엔 권장도서조차 '불온서적'이 될 수도 있다. 오랫동안 세계문학사에서 연애심리소설의 효시이자 바이블로 평가받아 왔지만, 한편으론 무엇보다도 탁월한 계급 분석과 급진적인 사회비판으로 통렬하게 읽히기 때문이다. 갈수록 세상이 둘로 나뉘어 가고 그 간격이 메울 수 없을 만큼 커져가는 시국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고전은 그래서 시간을 거슬러 여전히 빛을 발한다. 눈부시도록 아름답지만, 눈물 나게 슬픈 봄이다. 오래되었으되, 아픔의 번지수를 찾아 묻는 여전히 뜨거운 책 하나를 들춰 본다.

 

히어로를 찾는 세상
소설은 왕정복고기인 프랑스의 183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베리에르라는 시골에서 목수의 세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난 주인공 쥘리엥 소렐. 그는 나폴레옹 시대를 그리워하며 꿈을 키워나간다. 코르시카섬의 촌뜨기 출신 장교가 유럽을 지배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었던 나폴레옹 집권기는, 전쟁의 참화 속에서 민중을 도탄에 빠트렸지만,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다는 신화 또한 입증했기 때문이다. 개인의 노력에 의한 꿈의 실현, 신분의 수직상승이 있었던 시절이었다. 곧 가능성의 시대였다. 그리하여 소년 쥘리엥 소렐이 "재산도 없는 일개 무명의 중위였던 보나파르트가 검의 힘으로 세계의 주인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지낸 시간은 아마 한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1권 43쪽)

그러나 언제나 검으로 흥한 자는 검으로 망했다. 1814년 전쟁에서 대패한 나폴레옹의 실각 이후 와신상담하던 부르봉 왕조는 루이 18세를 내세워 왕정을 부활시킨다. 시계는 거꾸로 돌아갔다. 프랑스 대혁명의 성과를 고스란히 뒤엎고 '잃어버린 20년'에 복수하려는 왕과 귀족계급이 돌아온 것이다. 반동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개천에서 용이 나기는 다시 어려워졌다. 꽉 막힌 출세길로 인해 세상에 대한 반감은 커져 갔다. 스스로 길을 만들기 어려워진 사람들은 영웅을 찾았다. 나폴레옹의 인기는 국민들 속에서 높아져 갔고, 제2, 제3의 나폴레옹을 꿈꾸는 당대의 젊은이들은 문학가들이 빚어낸 '나폴레옹 신드롬'에 젖어 들었다. 섬에 갇힌, 그러나 언젠가 부활할 '비극의 영웅상'이 완성된 것이다!

 

작가 스탕달이 여기에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그는 양대 걸작 <적과 흑>, <파르마 수도원>에서 '행복한 소수(happy few)'를 주창한다. 지배계급을 조롱하고 맞서는 한편 지배계급의 여인들과 파격적이고 격정적인 사랑을 감행하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적 주인공은 바로 '행복한 소수'의 전형이다. 비록 '나폴레옹의 복제'라는 소영웅주의와 귀족주의, 비장미의 추구이긴 하지만, 허세와 강압, 권위와 폭력을 양산하는 '지배자'로서가 아니라 자유, 평등, 욕망의 해방을 꿈꿨던 진정한 자유주의 화신으로서의 '영웅'을 꿈꿨다. 곧 더 좋은 세상에 대한 갈망이었다.

 

1830년대 프랑스의 미생(未生)
하지만 쥘리엥 소렐은 아직 어렸다. 그저 "출세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골백번이고 죽음을 택하겠노라는 불굴의 결심(1권 42쪽)"으로 영웅 나폴레옹에 열광한다. 가족과 세상으로부터의 핍박과 멸시에 찌든 가난하고 영민한 소년에겐 우선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가 세운 출세 전략은 냉철하고 솔직했다. "보나파르트가 유명해졌을 때는 프랑스가 외적의 침입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군사적 공훈이 필요했고 또 인기가 있었다. 오늘날에는 마흔 살 난 사제가 십만 프랑의 연봉, 즉 나폴레옹 사단의 연봉보다 세 배나 더 받는 것을 볼 수 있다…사제가 되어야겠다."(1권 44쪽)

 

우리들의 미생(未生) 쥘리엥. 그는 세 배나 더 많은 연봉을 목표로, 명분의 붉은 군복[적:赤] 대신 실리의 검은 사제복[흑:黑]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다. 통속드라마 남자주인공의 전형인 쥘리엥의 엄청나게 강렬한 세속적인 열정을 발견한 현명한 노신부는 충고한다. "이보게, 소명감 없는 성직자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존경 받고 학식 있는 시골의 훌륭한 시민이 되게."(1권 79쪽)

 

노신부의 추천으로 아르바이트를 구하는데, 시장인 드 레날가(家) 자제들의 라틴어 가정교사 자리다. 그 집에서 연상의 여인 드 레날 부인을 만난다. 가난한 열아홉 살의 가정교사와 서른 살의 우아한 여주인은 곧 사랑에 빠지게 된다. 신앙심 깊은 아주머니의 부유한 상속녀로 열여섯 살에 문벌 좋은 귀족 드 레날과 결혼한 여자는 여태껏 연애를 경험한 적이 없었다. 그녀에게 쥘리엥의 꽃미남 외모와 지성, 인간미는 걷잡을 수 없는 매력이고 유혹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폴레옹이 몰락한 이후로 일체의 다정다감한 면모는 지방의 풍속에서 엄격히 추방되고, 위선이 자유주의 계층에까지 만면했고, 권태는 더 심해진"(1권 75쪽) 현실 속에서 이 가난한 청년의 매력은 단연 돋보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밀애: 불륜과 사랑 사이
드라마 <밀애(2014)>에서처럼 죄책감과 욕망 사이 '열 살 차이 밀애'의 아슬아슬한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귀족과 부자 들에게 모욕당하는 쥘리엥은 밥벌이와 자존심 사이에서 번번이 갈등한다. 더구나 과거 왕위를 찬탈한 나폴레옹을 공공연히 비난하는 전형적인 왕정주의자인 주인의 집에서 그동안 나폴레옹의 초상화를 몰래 감춰놓고 그림에 남몰래 흠모의 열정을 매일 써내려 가고 있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드 레날 부인에게 초상화가 든 검은 상자를 가져달라고 하고, 상자를 받고서는 고맙다는 말도 없이 곧 불태워버린다. 수상한 행동에 그녀는 그것이 필시 다른 여자의 초상화라 여기고 질투하며, 때로는 여주인이자 과외의뢰인인 갑으로서의 날카로운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럴 때마다 쥘리엥은 연인에게서 천상 부잣집 마님의 모습을 발견하며 회의하곤 한다. 하지만 평행선을 달릴 것만 같던 예민하고 불안한 감정은 어쩔 수 없는 욕망에 부딪히고 마모되면서, 어느새 하나의 꼭짓점을 향해 깊어져만 간다.

 

두 사람의 밀애가 불륜의 죄책감과 일탈의 행복으로 물들어 가는 동안, 남편 드 레날은 시골풋내기와 아내의 부정을 알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지위, 재산, 명예, 평판이 스캔들에 휘말려 사라질까 두려워 전전긍긍한다. 그는 아내와 헤어지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사회적 야망이 큰 그에게 상속녀인 아내는 아직까지 너무도 유용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놓고 제각기 다른 셈을 하는 세 사람의 심리는 현대의 멜로드라마 이상으로 치밀하게 얽혀 펼쳐진다. 스탕달의 소설이 연애통속극의 전형으로 저평가되는 데는 당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불륜이나 치정스캔들의 소재를 차용한 이유도 있지만, 본디 '멜로'란 계급, 가치관, 돈, 욕망을 벗어나 형성될 수 없기에 가볍다고만 할 수 없는 것이다. 곧 한 시대의 속살과 구조까지 적나라하게 들여다 보고 고발하는ㅡ그 어떤 인문사회비판서보다 효과적인 현미경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통속적인 것이란, 누구나 알고 있고 하고 있으되 아무도 겉으로는 부러 내세우지 않는, 실은 가장 보편적인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돈 때문에 저자들에게 내 영혼을 파는 습관이 들었단 말인가?"(1권 117쪽) 쥘리엥은 회의하지만 쉽사리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하늘을 나는 새의 부드러우면서도 힘차고 고독한 비행을 그리워했고, 그 운명을 나폴레옹의 것과 같다고 여기며 자신에게도 그 운명이 찾아오길 기대했다. 사랑과 욕망이 좌절을 거듭하는 동안 젊은이의 방황은 계속된다.
"그는 헤라클레스처럼 선과 악 사이가 아니라, 확실한 안락의 비속성과 청춘의 모든 영웅적 꿈 사이에 끼어 있었다.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나는 진정한 단호함은 없는 모양이구나. 그것이 그를 가장 괴롭히는 의혹이었다. 밥벌이를 하느라고 팔 년쯤 보내고 나면 비범한 일을 수행케 하는 그 숭고한 정력이 내게서 빠져나갈까 봐 두려워하고 있으니, 나는 아무래도 위대한 인물이 될 재목은 못 되는가 보다."(1권 125쪽)


출세 vs 운명의 개척
목숨을 건 전투의 위험으로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던 나폴레옹의 시대는 차라리 행복했던가? 쥘리엥은 다시 한 번 운명을 바꾸기로 한다. 불륜스캔들로 얼룩진 고향 베리에르를 벗어나 파리로 향한다. 왕정복고기의 파리는 활력이 없고 정치, 사상, 토론의 자유도 통제돼 있으며 음모, 위선, 허영으로 가득하다. 대혁명 시기 목숨을 내놓아야 했던 귀족사회는 다시 돌아올지도 모르는 시민 민주주의를 두려워했기에 복지부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정치'란 피해야 할 주제였고, 그저 신변잡기로 가득 찬 권태로운 사교놀이에 치중해야 했다. 그 속에서 쥘리엥은 당대의 거물 귀족 라 몰 후작의 비서가 된다. 입신출세를 지향하는 그로서는 절호의 기회였다. 타고난 수완을 발휘하여 후작의 두터운 신임을 얻는다. 그리고 후작의 딸 마틸드를 만난다. 자기계급의 부패와 허영, 무기력과 권태에 질려버린 이 귀족계급 아가씨는 자존심이 강했고 남성관이 독특했다. 그녀는 남자를 뛰어나게 만드는 것은 사형선고라고까지 생각한다. 목숨을 바칠 정도의 확신ㅡ그것만이 돈으로 살 수 없는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둘은 매번 부딪히고 '밀당'을 하다가 결국 서로 사랑에 빠진다. 급기야 마틸드는 임신까지 하게 된다. 곧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고백하고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한다. 하지만 '하인'으로서의 쥘리엥의 능력을 인정하고 아꼈을 뿐, 천한 하층계급 출신인 그를 제 자식의 배필로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후작은 결혼을 반대한다. 분수를 넘은 배은망덕에 분노한다. 곧 예비사위의 과거에 의심을 갖고 고향 베리에르의 드 레날 부인에게 편지를 하여 마침내 쥘리엥이 그녀와 불륜관계였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스캔들, 세상을 쏘다
그녀의 답장은 적나라했다.
"가난하고 탐욕스러운 그 사람(쥘리엥)은 빈틈없는 위선을 이용하여, 약하고 불행한 여인을 유혹함으로써 어떤 신분과 지위를 얻고자 했습니다......그 사람이 어떤 가정에서 성공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는 가장 신뢰받는 그 가정의 여인을 유혹하는 것입니다." (2권 318쪽)
세상에 퍼진 불륜 스캔들과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아픔으로 인해 죽기로 결심했으나 신앙심으로 차마 자살하지 못했던 그녀는, 고해사제의 강요에 못 이겨 라 몰 후작에게 이런 답장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귀족의 딸과 결혼하여 파리 사교계에 화려하게 데뷔하고 입신양명하려던 꿈은 깨졌다. 격분한 쥘리엥은 권총을 사서 고향 교회로 달려가 기도를 드리고 있던 과거의 연인 드 레날 부인을 저격한다.

 

곧 체포된 쥘리엥은 경미한 부상에 그쳐 살아난 드 레날 부인의 탄원, 우발적 사건임을 주장하라는 변호, 매수를 통한 탈옥 권유를 모두 뿌리친다. 자신의 계획적인 살인을 일관되게 주장하며 사형을 언도해 달라고 한다. "당신이 바라는 대로 나는 내 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까? 자, 이제 당신은 당신이 추적하는 먹이를 놓칠 리 없습니다. 당신은 선고를 내리는 기쁨을 맛볼 것입니다." (2권 324쪽) 일반적인 형사재판으로 끝나고 말았을 사건은 쥘리엥이 품고 있던 당대의 지배계급에 대한 불신과 비판을 통해 역사적인 정치재판으로 바뀐다. 엄혹했던 1980년대 한국 학생운동의 전설적인 '항소이유서'에 앞서 쥘리엥 소렐의 최후변론이 있었다.

 

부르주아지에 고함
"내 죄가 좀 더 가벼운 것이었다 해도 사람들은 내 젊은 나이가 동정을 살 만하다는 사실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나를 통해 나와 같은 부류의 젊은이들을 징벌하고 그들을 영원히 의기소침하게 하려 한다는 것을 본인은 잘 알고 있습니다. 즉 하층 계급에서 태어나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다행히 좋은 교육을 받았고 부유한 사람들의 오만이 사교계라고 부르는 것에 대담하게 끼어들려 한 젊은이들 말입니다. 여러분, 그 점이 바로 본인의 범죄입니다. 그리고 사실상 나는 나와 같은 계급의 동료들에게 판결받지 못하는 만큼, 내 범죄는 더욱더 준엄한 징벌을 당할 것입니다. 본인의 눈에는 배심원석에 부유한 농민 하나 보이지 않고 오직 분개한 부르주아들만 있을 뿐입니다." (2권 374쪽)


쥘리엥은 정치적 각성을 통해 사법제도의 공정성을 의심했다. 그는 자신보다 훨씬 더 큰 죄를 저지른 자들로부터 사형선고를 당함으로써 법과 제도의 모순을 온몸으로 고발하려고 했다. 그러면서도 살인 시도 자체에 대해서만큼은 자청하여 죄를 달게 받기로 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려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사랑했던 여인이 드 레날 부인임을 깨달았으며 그 사랑을 죽이려 했던 증오의 어리석음에 대한 속죄 때문이리라. 세속적인 욕망과 세간의 평판을 의식하면서 마지막까지 번뇌하던 쥘리엥은, 그에게 남은 단 하나의 사랑을 확인하고서는 마침내 평안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사랑의 항해, 목적지에 닿다
"그에게는 대기 속을 걸어 나가는 것이 오랫동안 바다에 나가 있던 항해자가 육지를 산책하는 것처럼 상쾌한 느낌이었다. '자, 만사가 잘되어 나간다. 나도 조금도 용기를 잃지 않았고', 그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잘려 나가려는 그 순간만큼 그 머리가 그렇게 시적인 적은 일찍이 없었다. 한때 베르지의 숲 속에서 지냈던 가장 감미로운 순간들이 한꺼번에 그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단순하고 자연스럽게 끝났으며 쥘리엥은 아무런 가식 없이 최후를 마쳤다."
(2권 417쪽)


아내였지만 결국 애인은 아니었던 마틸드는 쥘리엥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른다. 자신의 반려자가 치정살인미수극에 연루돼 참수당해 죽을 위기에 처하는 순간까지, 남자의 운명을 슬퍼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세간의 주목을 받을 것을 생각했던 궁극의 낭만적 영웅주의자 마틸드는 그녀만의 방식으로 사랑에 대한 예의를 다한다. 쥘리엥의 조각상을 세운 것이다.

 

세상으로부터는 인정받지 못했으나, 그가 유일하게 사랑한 여인 드 레날 부인은 쥘리엥과의 마지막 약속을 지킨다. 스스로의 생명을 해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죽고 난 사흘 뒤 그녀는ㅡ가정교사 쥘리엥의 제자이기도 했던ㅡ어린 자식들을 껴안고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품고 싶었던 어느 가난한 청년이 꿈꾼 단 하나의 사랑이 끝났다. 

 

에필로그
청운의 꿈을 안고 쥘리엥이 파리로 가던 마차 안 옆 좌석의 대화;
"삼십 년 후엔 장관들이 좀 더 능란해지겠지. 하지만 그들의 정직함은 오늘날이나 마찬가지일 거야. 영국의 역사가 우리의 장래를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생각하네. 여전히 권력 확장에 혈안이 된 왕이 존재하겠지. 국회의원이 되려는 야심도 여전할 테고, 명예욕이라든지 미라보가 해먹은 수십만 프랑 같은 것 때문에 시골 부자들은 잠을 못 잘 걸세. 그 작자들은 그런 걸 가지고 자유주의적이니 민중을 사랑하느니 하고 떠벌릴 테지. 왕당파들은 귀족원 의원이나 궁정 귀족이 되려는 욕망으로 날뛸 테고 말이야." (1권 380쪽)


그로부터 두 세기가 지난 한국에서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통렬하면서도 슬픈 한 마디가 덧붙여진다.
"국가라는 선박 위에서는 누구나 조종을 맡아보고 싶게 마련이거든. 돈벌이가 되니까 말일세. 단순한 선객(船客)에게는 발붙일 조그만 자리 하나 없을 것 아닌가?" (1권 380쪽)
그렇게 국가라는 시스템이, 그 시스템의 일부이자 전부인 어른들이 젊은이가 올라갈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는 한 오늘도 곳곳에서 수많은 쥘리엥 소렐은 울고 있을 것이다.

 

☞인용은 <적과 흑>1,2권, 민음사/ 스탕달 지음, 이동렬 옮김

 

 



젊음, 아픔의 번지수를 묻다: <적과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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련-소울 2015.09.28 13: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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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십대때읽고는 잊고있었던 책입니다~
시에스타 2015.09.03 15:4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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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출첵!!
주막집 2015.08.04 16: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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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좋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시에스타 2015.07.16 18: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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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수강완료!!
블랙두주 2015.07.08 06: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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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수강완료
범서 2015.06.03 08:4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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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술도 생각하며~~~~~~~~~~~~~~
강촌 2015.05.15 04: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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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사랑의 긍정적인 힘
얼쑤 2015.05.12 21: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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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우리는 우리의 국가를 조종하는 사람을 믿고 있는가?
소프 2015.05.12 13: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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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수강완료!
duddns 2015.05.12 09: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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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출석
sniper 2015.05.11 09: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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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감사합니다~~
duddns 2015.05.11 00: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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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완료!
한송이 2015.05.10 09:2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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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거...ㅠ
duddns 2015.05.10 08: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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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완료!
날살돌이 2015.05.10 07:3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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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완료
duddns 2015.05.09 09:3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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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출석
zizix 2015.05.08 14:4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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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남의 일이 아닌데요?웃프네요 ㅎㅎ;
뚱띵이 2015.05.08 13:2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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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고전은 현대의 거울이군요...
duddns 2015.05.08 08:3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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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완료
마냥 2015.05.08 00: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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